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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새롭게 다시 만납시다! 8강
운동의 촉매자(Movement Catalyst) 예수님 |
▷ 예수님께서 운동의 촉매자였다고요?
예, 그렇습니다. 이와 같은 뜻으로 보그(Borg)는 예수님을 ‘운동의 창시자’ (Founder)나 ‘운동의 선구자’(Initiator)라고도 부릅니다. 예수님을 운동의 촉매자(Catalyst)라고 부르든 아니면 운동의 창시자나 선구자라고 부르든 그 의미는 모두 똑같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생애 동안에 그를 중심으로 하여 소위 ‘예수 운동’ (Jesus Movement)이라고 불리는 사회변혁운동이 태동했다는 것입니다.
▷ ‘예수 운동’이라고요? 왜 ‘목회’(ministry)라는 용어 대신에 ‘운동’(movement)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나요?
그 이유는 현대인들이 ‘목회’를 종교적인 활동으로 축소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앞장들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예수님 당시는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어 있지 않았고 서로 밀접히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종교적인 활동은 곧 사회적이요 정치적인 활동이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목회는 종교적인 영역에 머물렀던 것이 아니었고, 당시 사회의 변혁을 도모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운동’이란 용어를 선택하게 된 것입니다.
▷ 예수님께서 운동의 촉매자였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우리는 앞에서 ‘부활절 이전의 예수님’이 ‘영의 사람,’ ‘치유자,’ ‘지혜의 스승,’ 그리고 ‘사회적 예언자’였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예수님이 ‘운동의 촉매자’였다는 것은 위의 모든 것들이 합쳐진 결과물입니다. 즉, 영으로 충만했던 예수님은 구마와 치유 기적을 통해 개인은 물론 사회의 질병과 고통을 치료하고 치유했으며, 또한 인습적인 지혜를 넘어서는 전복적인 지혜를 가르치심으로써 대안적인 삶의 길과 사회적 비전을 제시하셨으며, 나아가 억압적이고 착취적인 당시의 지배체제를 고발하는 사회적 예언 활동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구현하고자 하셨습니다. 이 모두는 당시 유대 사회의 변혁(transformation)을 기도하는 사회 운동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를 통칭하여 ‘예수 운동’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 예수 운동은 이미 앞장들에서 살펴보았듯이 매우 포용적이면서(inclusive) 평등주의적인(egalitarian) 운동으로서 당시의 뚜렷한 사회적 경계선들을 허물었습니다. 그 핵심 가운데 하나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었던 “열린 식탁 교제”(open table fellowship)였습니다. 기독교 성만찬의 모체인 예수님의 이 열린 식탁 교제는 그의 대안적인 사회적 비전을 구체화한 것이었습니다.
▷ ‘열린 식탁 교제’가 예수 운동의 핵심이었다고요?
그렇습니다. 6강 마지막에서 누가복음 14장 16-24절에 있는 ‘만찬 비유’를 소개한 적이 있는데, 그 비유를 다시 한번 보시겠습니다.
16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초대하였다. 17잔치 시간이 되어, 그는 자기 종을 보내서 ‘준비가 다 되었으니, 오십시오’ 하고 초대받은 사람들에게 말하게 하였다. 18그런데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핑계를 대기 시작하였다. 한 사람은 그에게 말하기를 ‘내가 밭을 샀는데, 가서 보아야 하겠소. 부디 양해해 주기 바라오’ 하였다. 19다른 사람은 ‘내가 겨릿소 다섯 쌍을 샀는데, 그것들을 시험하러 가는 길이오. 부디 양해해 주기 바라오’ 하고 말하였다. 20또 다른 사람은 ‘내가 장가를 들어서, 아내를 맞이하였소. 그러니 가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21그 종이 돌아와서, 이것을 그대로 자기 주인에게 일렀다. 그러자 집주인이 노하여 종더러 말하기를 ‘어서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사람들과 지체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과 눈먼 사람들과 다리 저는 사람들을 이리로 데려 오너라’ 하였다. 22그렇게 한 뒤에 종이 말하였다. ‘주인님, 분부대로 하였습니다만, 아직도 자리가 남아 있습니다.’ 23주인이 종에게 말하였다. ‘큰길과 산울타리로 나가서, 사람들을 억지로라도 데려다가, 내 집을 채워라. 24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초대를 받은 사람들 가운데서는, 아무도 나의 잔치를 맛보지 못할 것이다.’”
이 비유의 마지막 문장,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초대를 받은 사람들 가운데서는, 아무도 나의 잔치를 맛보지 못할 것이다”는 이 비유의 의미에 대한 누가의 해석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누가의 해석이 아니라 이 비유의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큰 잔치를 준비하고 종을 보내어 친구들을 참석하도록 권유하는 어떤 사람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초대된 사람들은 각자 참석할 수 없는 나름대로의 핑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잔치는 이미 준비가 되었으나, 좌석은 텅텅 비게 되었습니다. 이에 주인은 그의 종을 보내어 “어서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사람들과 지체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과 눈먼 사람들과 다리 저는 사람들을 이리로 데려 오너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자리가 남자 주인은 “큰길과 산울타리로 나가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을 억지로라도 데려다가, 내 집을 채워라”고 합니다.
잠시 이 잔치 장면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만약 길거리에서 누군가가 이 자리에 초대되어 왔다면, 거기에는 분명히 성별과 계급과 신분과 지위가 다양한 사람들이 온통 뒤섞여있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서로서로 어깨를 맞대고 앉아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즉, 남성 옆에 여성이, 노예 옆에 자유인이,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 옆에 높은 사람이, 제의적으로 불결한 사람 옆에 정결한 사람이 말입니다. 이것을 1세기 유대 사회의 관습의 눈으로 본다면 사회적인 악몽이요 동시에 위협이었을 것입니다.
문화인류학자들은 식사는 배고픔이란 고통을 덜기 위한 생리적인 행위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관계와 행위에 관한 사회적 규칙의 축소된 모형”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식탁 교제가 경제적인 차별, 사회적인 계급체계, 그리고 정치적인 불평등을 가늠케 해주는 지도가 된다는 말입니다. 즉, 누가 언제 어디에서 어떤 사람들과 함께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 하는 것을 보면 그 공동체의 사회·정치·경제적 상황을 읽어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사농공상(士農工商)에 따른 신분 차별이 뚜렷했던 조선 사회에서 양반과 상놈이 겸상(兼床)을 하고 마주앉아 식사할 수 있었습니까? 남존여비(男尊女卑)와 남녀유별(男女有別)이 관습이었던 시절에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한 밥상에 앉아 식사할 수 있었습니까? 이렇듯 누가 누구와 함께 식사하느냐 하는 것은 그 사회상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이것은 먼 옛날의 일만이 아닙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활동하던 1950-60년대 미국에서는 흑인과 백인이 한 식당을 이용할 수 없었습니다. 만약 한 식당을 이용하더라도, 흑인용 좌석과 백인용 좌석은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었고, 심지어는 계산대도 따로 있었습니다. 이렇듯 분리된 밥상, 격리된 식탁은 인간의 분리와 차별을 상징화하는 것입니다. 이와 반대로 개방된 밥상은 인간 공동체, 하나 됨, 평등을 상징화하는 것입니다. 즉, 기존의 밥상이 사회의 수직적인 차별과 수평적인 분열의 축소판 지도였다면, 누구나 참석할 수 있었던 개방된 밥상은 급진적 평등주의, 즉 구성원들 사이에 어떤 차별도 용인하지 않으며 그들 중에는 어떤 계급조직도 필요 없다고 보는 절대적 인간 평등사상의 구현이요 상징이었습니다. 이런 시각에서 ‘만찬 비유’를 다시 본다면, 그것은 당시 사회를 향한 가장 근본적인 위험이며 급진적인 위협이었을 것입니다.
▷ 하지만 ‘만찬 비유’는 단지 이야기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물론 ‘만찬 비유’는 하나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당시 사회의 축소된 모형인 밥상, 즉 분리하고 배척하고 차별하는 자리로서의 밥상에 도전한, 따라서 궁극적으로는 당시 사회에 도전하는 매우 풍자적인 이야기였습니다. 더구나 예수님은 이 비유를 이야기하신 것에 머물지 않았고, 이 비유를 삶으로 살아내셨습니다. 바로 이 점에서 이 비유는 이야기 이상입니다.
우리는 그 구체적인 증거를 Q복음서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7장 33-34절과 마태복음 11장 18-19절은 당시 세간에 떠돌던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에 대한 인물평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와서, 빵도 먹지 않고 포도주도 마시지 않으니, 너희가 말하기를 ‘그는 귀신이 들렸다’ 하고, 인자는 와서,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니, 너희가 말하기를 ‘보아라, 저 사람은 마구 먹어대는 자요, 포도주를 마시는 자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다’ 한다.
세례자 요한은 홀로 광야로 나아가 금욕적인 삶을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그를 ‘귀신들렸다’, 즉 ‘미쳤다’고 했습니다. 이에 비해, 예수님은 금욕생활을 하지 않고 사람들과 더불어 먹고 마셨습니다. 크로산(Crossan)은 이를 ‘금식하는 요한’(fasting John)과 ‘잔치하는 예수’(feasting Jesus)라는 말로 대조시킨 바 있습니다. 새번역성경은 예수님의 별명을 “마구 먹어대는 자요, 포도주를 마시는 자”라고 다소 점잖게 번역했지만, 원어를 직역하면 ‘먹보’요 ‘주정뱅이’입니다. 더구나 예수님과 함께 먹고 마신 사람들은 “세리와 죄인”이었습니다. 이것은 앞의 비유에서 이야기하신 ‘열린 밥상’(open table)을 예수님께서 삶으로 살아내셨다는 분명한 증거입니다. 그랬기에 당시 사람들이 예수님을 ‘먹보요 주정뱅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라고 경멸했던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을 비난한 사람들은 예수님이 구분할 것을 적절히 구분하지 못했고, 차별할 것을 적절히 차별하지 못했다고 핀잔을 주었던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분리하고 배척하고 차별하던 자리였던 당시의 닫힌 밥상을 전복하는 열린 밥상에 대해 이야기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 이야기를 실제 삶으로 살아내셨던 것입니다. 이 “밥상공동체 운동”(이 용어는 박재순 목사에게서 빌려온 것임)은 지극히 의도적이었고 계획적이었으며, 예수님의 평등주의적이며 포용적인 사회적 비전을 구체화한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밥’의 문제는 ‘누구와 함께 먹는가’ 하는 ‘밥상’의 문제 이전에 ‘먹느냐 굶느냐’ 하는 ‘정의’의 문제와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따라서 밥상공동체 운동은 실로 하나님 나라 운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밥’ 문제가 ‘정의’와 연관이 있다고요?
그렇습니다. 시인 김지하는 다음의 짤막한 시에서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이 갈파한 적이 있습니다.
밥이 하늘입니다.
하늘을 혼자 못 가지듯이
밥은 서로 나누어 먹는 것
밥이 하늘입니다.
하늘의 별을 함께 보듯이
밥은 여럿이 같이 먹는 것
밥이 입으로 들어갈 때에
하늘을 몸 속에 모시는 것
밥이 하늘입니다.
아아 밥은
모두 서로 나누어 먹는 것.
시인 김지하는 ‘밥’은 혼자 먹어서는 안 되고 나누어 먹어야 한다고 노래합니다. 밥, 즉 물질의 독(獨)차지는 결국 독(毒)차지가 되고 말 것이라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나라는 밥의 독차지를 구조적으로 용인하는 사회 제도와 정치 체제에 대한 거부를 뜻합니다. 이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 이야기’(막 6:30-44)가 전하는 메시지이기도합니다. 음악가 류형선은 이 기적 이야기를 소제로 <고등어 두 마리와 찹쌀떡 다섯 개>라는 동요 풍의 복음성가를 지었는데, 그 가사는 이렇습니다.
맛있는 밥을 서로 먹여주면서
더러운 발을 서로 씻어주면서
고등어 두 마리와 찹쌀떡 다섯 개로
우린 오천 명도 무지무지 배부를 수 있단다
이천 마리 고등어를 오천 개나 되는 떡을
이리저리 뺏어 모아 저 혼자서 다 먹고도 모자라는 사람들아
맛있는 밥을 서로 먹여주면서
더러운 발을 서로 씻어주면서
고등어 두 마리와 찹쌀떡 다섯 개로
우린 오천 명도 무지무지 배부를 수 있단다
류형선은 이 간단한 노랫말을 통해 물질을 독점한 세속 사회와 나눔과 섬김의 하나님 나라를 극명하게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현재 전 세계 인구 중 절반 이상이 하루에 2달러 이하로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그 중 12억은 겨우 1달러로 생존해나가고 있답니다. 7강에서 소개한 시인 박노해의 말을 다시 한번 인용하면 “이 엄연한 현실을 정직하게 바라보지 않은 어떠한 가치, 어떠한 사랑, 어떠한 도덕, 어떠한 목표도 그것은 허구이며 위선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듯 밥의 문제는 정의의 문제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밥상공동체 운동은 분리하고 배척하고 차별하던 사회적 경계(social boundary)를 전복시키는 일이었음과 동시에 물질의 독점을 떠받치고 있던 구조악(systemic evil)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 예수님이 운동의 촉매자였다면, 그 운동의 최종 목표는 무엇이었습니까?
보그(Borg)는 크로산(Crossan)의 연구 성과를 받아들여 그것이 “중개인 없는 하나님 나라(brokerless Kingdom of God)의 건설”이었다고 말합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를 알려면 당시 사회에 대한 좀더 깊은 이해가 필요합니다.
고대 사회에는 오직 두 계급, 즉 소수의 상류 계급과 절대 다수의 하층 계급만이 존재했습니다. 가운데 중간 계급을 갖고 있지 않았던 그런 사회가 어떻게 완전히 분열되어 파괴되지 않고 존속될 수 있었을까요? 그 이유는 ‘후견인과 의뢰인 체제’ (patronage and clientage)가 그 사회를 하나로 묶어주고 상호 연결시켜 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후견인과 의뢰인 체제’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고리로서 거대한 인간 그물망과도 같은 것인데, 이는 어떤 면에서 각종 인맥(人脈)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의 모습과 매우 유사합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지금도 혈연(血緣), 지연(地緣), 학연(學緣) 등의 여러 인맥을 통해서 각종 청탁이 오고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고대 사회는 이런 청탁이 체제화 되어 있었습니다. 여기서 청탁을 하는 사람을 의뢰인(client)이라고 하고 청탁을 받는 사람을 후견인(patron)이라고 합니다. 후견인과 의뢰인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기도 했지만, 때로는 중개인(broker)을 통해 간접적으로 연결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후견인과 의뢰인이 수평적인 관계에 있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수직적인 관계에 있을 때가 더 많았습니다. 그리고 권력 피라미드의 최상층이나 최하층에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 모든 사람은 후견인임과 동시에 의뢰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갑’이라는 사람은 자기보다 힘없는 여러 사람들의 청탁을 받는 후견인이면서, 동시에 자기보다 힘 있는 사람들에게 청탁을 하는 의뢰인이었던 것입니다. 때로는 어떤 사람의 청탁을 받아 나 아닌 다른 사람을 통해 해결해 주는 중개인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당시 사회는 “후견인-(중개인)-의뢰인”이라는 거대한 인간 그물망으로 상호 연결되어 의존과 지배를 영속했던 거대한 권력 피라미드와 같았습니다.
그런데 크로산이 주목한 것은 이런 사회 속에서 한 곳에 머무는 것을 거부하고 계속해서 이동했던 예수님의 행태(行態)입니다. 이는 예수 운동의 성격과 목표가 무엇이었는지를 시사하는 중요한 증거입니다. 우리는 마가복음 1장 35-38절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있습니다.
35아주 이른 새벽에, 예수께서 일어나서 외딴 곳으로 나가셔서, 거기에서 기도하고 계셨다. 36그 때에 시몬과 그의 일행이 예수를 찾아 나섰다. 37그들은 예수를 만나자 “모두 선생님을 찾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8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가까운 여러 고을로 가자. 거기에서도 내가 말씀을 선포해야 하겠다. 나는 이 일을 하러 왔다.”
이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서 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치유하고 나아가 베드로의 집으로 모여든 그 동네의 온갖 병든 사람들이 치유한 사건 뒤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당시 사람들이라면 베드로의 집이 예수님의 치유를 위한 중개소(brokerage place)가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음 날 아침 혼자 호젓한 곳으로 나아가 기도를 드렸으며, 베드로가 쫓아와 돌아가자고 했을 때, “가까운 여러 고을로 가자. 거기에서도 내가 말씀을 선포해야 하겠다. 나는 이 일을 하러 왔다”고 대답하십니다. 예수님은 왜 ‘다른’ 마을로 가시고자 했을까요?
그 이유는 노자(老子)가 말한 “공성이불거”(功成而不居), 즉 “공을 이루었으면 그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는 말씀을 몸소 실천하신 것에 다름 아닙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한 장소에 묶어두고, 그의 후견인(patron)인 예수님을 병에 걸린 의뢰인(client)들과 중개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공(功)을 이루었으되 거기에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나아가 예수님께서는 “중개인이 필요 없는 하나님 나라”(unbrokered Kingdom)를 그를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제공하고 있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이동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크로산(Crossan)의 말을 직접 들어보시겠습니다.
영적인 선물과 물질적인 선물의 동등한 나눔, 기적과 밥상의 동등한 나눔은 한 장소에 중심을 둘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왜냐하면 바로 이러한 장소의 계급화, 즉 저기 위에 여기를 두고, 저곳 위에 이곳을 두는 계급화는, 예수가 선포하는 철저히 개방된 공동체를 상징적으로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예수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나라는 후견인으로서 그가 제공할 수 있는 자신의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을 위해 중개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 안에서 개인들이 서로 서로 그리고 하나님과 직접적인 접촉을 가질 수 있는, 그래서 어떤 기존의 중개인들이나 혹은 고정된 장소에 의해서도 매개되지 않는, 철저한 그리고 중개가 필요 없는 평등의 공동체입니다. (존 도미닉 크로산, 예수는 누구인가 중에서)
▷ 역사적 예수님이 중개인이 필요 없는 하나님 나라를 추구했다면 현재 교회가 주장하고 있는 중보자(mediator)로서의 예수상(像)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은 무상의 치유와 나눔의 식사가 있는 공동체, 하나님 앞과 서로의 앞에서 누구나 평등한 공동체를 추구하던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여성과 어린이와 남성, 그리고 나병환자와 적빈(赤貧)자와 정신질환자들을 똑같이 초대했습니다. “와서 함께 먹고 고침을 받으십시오. 그리고 당신이 경험한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누어주십시오”라고 말입니다. 이 새로운 공동체는 하나님 나라의 모습, 즉 시이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직접 통치하시게 될 때의 세계의 모습이었습니다.
이렇듯 예수님께서는 무상의 치유와 공동 식사를 제공함으로써, 기존하는 사회의 교권 체계와 가부장적 체계에 대해 “아니오” 할 수 있는 공동체를 선언했고 창조했습니다. 따라서 그는 자신이 당시 사람들에 의해서 새로운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중개인으로 해석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계속 유랑했고, 어느 곳에도 안주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중보자(mediator)이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히려 사람들 사이에나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는 어떠한 중보자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선언한 사람이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이란 역사적 예수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타나신 분이라는 것에 대한 신앙입니다. 즉, 신앙은 예수님을 역사적으로 재구성하는 것 이상의 문제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역사적 예수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발견하는 것이며, 또한 그것이 우리의 현재 삶에 주는 함축적 의미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역사적 사실들을 넘어서서, 그것의 ‘의미’들을 추구하기 위해 씨름하는 데로 나아갑니다. 그러나 신앙은 역사적 사실들을 무시하거나 우회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신앙에서 믿는 것은 우리가 역사에서 알고 있는 것의 궁극적인 의미입니다. 이제껏 시도했던 예수님에 대한 역사적 재구성은 우리가 예수님을 어떻게 믿어야 할지를 알려줍니다. 따라서 만약 우리가 역사적 예수가 “중개인 없이”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관계성에로 사람들을 불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하나님과 인간의 유일한 중보자로 주장되는 기독교의 교리를 더 이상 ‘문자적’으로 믿는 것은 힘이 들 것입니다.
중보자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서서 그 관계를 성립시키고 화해를 가져오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예루살렘 성전에 있던 사제들이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요단강으로 나아가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예루살렘 성전에서 사제들에 의해 행해지던 당시의 제사의식을 부정(否定)하셨습니다. 나아가 예수님께서는 병자들을 치유하신 후 단 한번도 “내가 너를 구원했다”고 말씀하시지 않았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나 예수는 너와 하나님을 잇는 중보자가 아니다”는 선언에 다름 아닙니다. 따라서 현재 교회가 주장하고 있는 중보자(mediator)로서의 예수상(像)은 반드시 재검토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예수 이상이지만, 그렇다고 예수 이하인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중보자(mediator)로서의 예수상(像)에 대해서는 후에 “부활절 이후의 예수님”에 대해 다루면서 다시 자세히 검토하도록 하겠습니다.
▷ 앞에서 예수님의 열린 식탁 교제가 기독교 성만찬의 모체라고 했는데, 성만찬의 모체는 최후의 만찬 아닙니까?
최후의 만찬(the Last Supper)은 마가복음 14장 22-25절에 다음과 같이 보도되어 있습니다.
22그들이 먹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빵을 들어서 축복하신 다음에, 떼어서 그들에게 주시고 말씀하셨다. “받아라. 이것은 내 몸이다.” 23또 잔을 들어서 감사를 드리신 다음에,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은 모두 그 잔을 마셨다. 24그리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다. 25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제부터 내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새것을 마실 그 날까지, 나는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다시는 마시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죽기 전에 빵과 포도주를 나누는 식사를 통해 몸과 피를 나누는 그의 순교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새로운 유월절 만찬을 제정하신 것처럼 되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1장 23-25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이러한 제도에 대해서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한편, 요한복음은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함께 하는 마지막 만찬에 관해 말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 만찬은 유월절 식사도 아니고 또 그의 죽음을 상징적으로 기념하는 제도화된 의식도 아닙니다. 도마복음이나 Q복음도 최후의 만찬 전승에 대해서 몰랐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성찬식과 관련해서 또 한 가지 중요한 자료는 약칭해서 디다케라고 불리는 열두 사도들의 가르침이란 1세기 후반의 교회 규범서입니다. 이 자료의 9장은 성찬식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1감사(례)에 관해서, 여러분은 이렇게 감사드리시오. 2우선 잔(盞)에 대해서 (이렇게 하시오). 우리 아버지, 당신 종 예수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 주신 대로 당신 종 다윗의 거룩한 포도나무에 대해 우리는 당신께 감사 드립니다. 당신께 영광이 영원히. 3빵 조각에 대해서 (이렇게 하시오). 우리 아버지, 당신 종 예수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 주신 생명과 지식에 대해 우리는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당신께 영광이 영원히. 4이 빵조각이 산들 위에 흩어졌다가 모여 하나가 된 것처럼, 당신 교회도 땅 끝들에서부터 당신 나라로 모여들게 하소서. 영광과 권능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원히 당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양모 역주, 열두 사도들의 가르침-디다케 중에서
이것은 1세기 후반기의 공동체적이고 제의적인 공동식사에 관해서 말하고 있는데, 거기에는 유월절 식사와 최후의 만찬, 또는 수난의 상징이 그 공동식사의 기원이 되었다거나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는 암시를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 이유가 디다케의 저자가 위의 요소들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고의적으로 그것들을 무시했기 때문이었을까요? 그렇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가능성은 성찬식이 마가복음의 보도처럼 예수님 자신에 의해서 엄숙하고 형식적이고 결정적인 제도로 제정되어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크로산(Crossan)은 예수님께서 창시하시고 뒤로 물려준 것은 앞에서 살펴본 열린 밥상공동체 전통이었으며, 예수님이 죽은 후에 어떤 기독교 집단들이 그의 생애 중에 있었던 공동식사와 그의 죽음 기념식을 결합한 제의로서 최후의 만찬을 만들어 냈고, 그것이 아주 느리게 다른 기독교 집단들로 퍼져나갔다고 결론짓습니다.
그러니까 최후의 만찬은 역사적인 사실이 아니었고, 따라서 지금 우리가 거행하고 있는 성찬식의 모체는 최후의 만찬이 아니라 예수님의 열린 식탁 교제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 예수님의 열린 식탁 교제가 기독교 성만찬의 모체라면, 현재 대부분의 기독교 교파에서 세례교인만을 성만찬에 참여시키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제가 6강에서 “우리의 현재 형태의 교회생활이 예수님과의 연속성을 반영하고 있는가? 아니면 깨뜨리고 있는가?”를 묻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크로산(Crossan)의 말을 인용한 적이 있습니다. 이를 성만찬에 적용시키면 많은 문제점이 발견됩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현재의 성만찬은 예수님의 열린 밥상공동체에 그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열린 밥상을 통해 당시 사회의 경계선들을 허물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지난 2천년 동안 성찬식을 통해 여러 경계선들을 재건한 것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열린 밥상과 우리의 성만찬을 비교하면 그 차이점들이 확연히 드러납니다. 예수님의 열린 밥상은 정식의 보통 음식(full and normal eat-and-drink meal)을 먹고 마시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성찬식은 실물을 대용한 한 조각의 빵과 한 모금의 잔(token nibble-and-sip meal)을 먹고 마십니다. 열린 밥상은 진짜 음식을 나눴지만, 성찬식은 상징적 음식만을 나눕니다. 예수님은 그의 밥상에 모든 사람들을 초대하고 누구나 환영했지만, 우리는 성찬을 세례교인만으로 제한합니다. 예수님은 그의 밥상을 열어놓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성찬을 닫혀있습니다. 예수님은 가시는 곳마다 열린 밥상을 통해 사회적 경계선들을 무너뜨리셨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가는 곳마다 성찬식을 통해 종교적 경계선을 재건합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사회 변혁을 일으키셨는데, 우리 그리스도인은 가는 곳마다 예식(ceremony)만을 드립니다.
위의 비교를 통해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예수님의 살아생전에 누구나 참석할 수 있었던 열린 밥상공동체가 그가 죽은 이후에 성만찬으로 제의화(ritualized)된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누구나 참석할 수 있었던 밥상공동체가 제의화되었음과 동시에 ‘파괴’되었다는 것입니다. 제의화는 불가피했을지 몰라도 파괴되는 것은 꼭 그래야 했던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즉, 열린 밥상공동체가 이런 저런 이유로 성만찬으로 제의화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형식이 바뀌었다고 해서 꼭 그 내용까지 바뀔 필요는 없었습니다. 아니, 이 경우는 결코 바뀌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성만찬과 관련하여 묻고자 하는 것은 그것이 정확히 예수님이 행했던 것과 같은 것이냐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예수님의 기본적인 강조점과 일치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만약 기본적인 강조점이 일치하지 않는 요소들이 교회 안의 존재한다면 그것들은 반드시 개혁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열린 밥상공동체는 “모든 사람을 환영하고 모든 것을 함께 나누는 것”(a welcoming of everyone and sharing of everything)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대부분의 기독교 교파들은 성찬식의 참여에 제한을 둡니다. 대부분의 교파는 세례교인만이 성찬식에 참여할 수 있고, 또 어떤 교파는 비록 유아세례를 받았더라도 어린이의 성찬 참여를 금지시키기도 합니다. 한편, 제가 미국에서 5년간 목회했던 ‘그리스도의 연합교회’(United Church of Christ)처럼 성찬 참여에 아무런 제한도 두지 않는 교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찬식의 참여를 누구한테까지 허용할 것인가가 아닙니다. 이것보다 더 큰 문제는 ‘나눔’에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거행하고 있는 성만찬은 무상의 치유와 나눔의 식사가 있는 공동체, 하나님 앞과 서로의 앞에서 누구나 평등한 공동체를 추구하던 것에서 기원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 밥상공동체가 초대교회에서 어떻게 계승되었는가를 사도행전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그들은 재산과 소유물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대로 나누어주었다.(행 2:44-45)
많은 신도가 다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서,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하였다. 그들 가운데는 가난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행 4:32.34a)
여기에 비추어 지금 우리의 교회 모습을 성찰해 보시기 바랍니다. 크로산(Crossan)은 “우리의 현재 형태의 교회생활이 예수님과의 연속성을 반영하고 있는가? 아니면 깨뜨리고 있는가?”라는 질문과 함께 이런 질문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배에서 행하고 있는 것은 일주일에 한번 세상으로부터 도피하는 일입니까, 아니면 예수가 세상에 뿌리내리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는 것입니까?” 이 질문에서부터 운동의 촉매자였던 예수님을 오늘 여기서 살아내는 길을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새만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