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인을 넘어 더불어가는 사회를 만들자-더불어가는 삶 >
얼마 전, 집 앞 화원에서 난생처음 강낭콩 씨앗을 구입해 싹이 나올 것을 기대하며 심었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고 생각했는데, 일주일이 지나도 소식이 없어 화단을 파보니 씨앗들이 썩어 있었다.
왜일까? 책에서 배운 그대로 했는데… 한참을 앉아 있을 때 허름한 차림의 노인이 옆에 앉으며 말했다. “강낭콩을 물에 불렸다 심어봐요. 싹이 트기 전까지는 물을 너무 많이 주지 말고 어두운 곳에 두었다가 싹이 나면 햇빛을 보여줘요.” 노인의 행색과 말투는 ‘책보고 그대로 한 내가 실패했는데 저 사람이 뭘 알겠어?’ 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하지만 다시 한번 노인의 말대로 심은 강낭콩은 3일 만에 싹이 돋았으며 일주일만에 단단한 뿌리를 내렸다. 혼자 잘난 줄 아는 편협한 나를 비웃듯, 지식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을 지혜로 이겨낸 것이다.
2020년 통계청 가계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상위 20%의 시장소득이 하위 20%의 시장소득 보다 약 7.82배 높다고 보고했다. 이는 1년 전 2019년보다 월등히 증가했다. 소득 양극화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돈을 부르고 지식은 지식을 부른다.
똑똑한 부모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똑똑해질 수 있는지 요령을 가르친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자기 잘난 맛에 혼자 사는 편협한 개구리’가 되어간다. 자신보다 가진 것, 배운 것이 없는 사람들을 무시하며 그들에게는 배울 점이 없다 여긴다. 하지만 ‘사회’란 무리끼리 모여 이루는 집단을 뜻하며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세상을 혼자 살아갈 수 없다.
그럼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살아야 옳은 것인가? 아니다. 현실적으로 우리가 법을 개정하거나 세계 자본주의를 바꿀 수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실행할 수 있는 더불어 사는 삶의 자세는 어떤 것이 있을까?
첫 번째로 공평을 넘어 평등한 사회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 1개의 발판을 주는 것이 아니라 키가 작은 사람에게는 2개의 발판을 주어 눈높이를 맞춰 주는 것. 두 번째로 지혜는 모든 사람에게서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지식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은 때때로 삶이 축적된 지혜로 해결된다. 그것은 더 배우고 더 가진 사람들의 것이 아니다. 세상을 더 산 노인, 모진 풍파를 겪은 사람들… 가진 것이 없더라도 그들의 삶의 지혜를 배우는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는 코로나19를 통해, 인간은 혼자서만 잘 한다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결국 다 같이 더불어 살아야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
상대방을 무시하고 혼자 잘난 맛에 살면 싹도 못 틔운 강낭콩처럼 편협한 삶을 살게 된다. 하지만 평등과 지혜의 배움으로 우리는 사회 양극화를 넘어 더 옳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
강낭콩의 싹이 트고 단단한 뿌리가 내리는 것처럼...
▶ 함께 실천합시다
∎ 가정
-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자녀를 교육합시다.
∎ 교회
- 모두가 존중받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살아가도록 교육하고 실천합시다.
- 교인들과 함께하는 생활신앙인으로 살아갑시다.
∎ 사회
-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는 사회를 만들어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