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등급으로 나누지 마세요.
장애등급제란 무엇인가. 장애등급제는 1988년에 도입된 것으로 장애가 심한 정도에 따라 1~6급으로 나눈 것이다. 이는 장애인 복지제도가 단계적으로 도입되고 확대되는데 기여했고 이후 장애인 복지의 기반이 되었다. 지난 30년 동안 몇 차례에 걸친 장애인복지법 개정으로 “심신장애자”라는 모욕적인 명칭이 “장애인”으로 대체되고 5개에 불과했던 장애유형이 뇌병변 장애, 간질장애, 안면 장애 등 15개 유형으로 늘어났지만, 장애등급은 장애인 서비스 지급기준으로 활용되어왔다. 하지만 장애인의 개별적 욕구를 파악할 수 없는 제도라는 지적이 끊이질 않았다.
현 정부는 2019년 7월부터 장애등급제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래서 장애등급을 없애고 장애인을 ‘장애의 정도가 심한 장애인(중증)’과 ‘심하지 않은 장애인(경증)’으로 단순하게 구분하고 있다. 시행령 및 시행규칙에 따르면, 활동지원급여와 보조기기 교부, 거주시설 이용, 응급안전 등 4가지 서비스를 지원받을 때 장애인들은 기존 ‘등급’이 아닌, 조사원이 장애인의 복지요구, 생활 수준, 건강 상태 등에 대한 세부항목으로 구성된 종합조사표를 들고 장애인과 상담한 뒤에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의 ‘종합조사’를 거치게 된다. 그런데 종합조사표가 새롭게 도입되더라도, 활동이 어려운 장애인들이 더 많은 시간 활동지원서비스를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장애등급제라는 이름은 벗어났으나 여전히 장애인을 등급화하는 방식의 장애인 복지의 전반적인 틀은 변하지 않은 것이다.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가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표’에 바탕을 둬 장애인 2520명의 활동보조 시간을 모의 평가해 본 결과 조사대상의 34.4%가 전보다 지원 시간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최용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복지부와 기재부는 등급제 폐지를 홍보하면서도 예산은 없다고 하고 있다“며 “실제로 예산이 없다기보다는 (장애인에) 우선순위를 두지 않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한, 박경석 전장연 공동대표는 “종합조사표는 정부 예산에 맞춰 시험 칠 자격을 주는 시험지와 같다.”며 “예산을 크게 증액하지 않은 상태에서 나눠 먹기 하다 보니, 뇌병변 장애인은 활동지원서비스이용시간이 늘어나는 반면 시각장애인 등은 이용시간이 오히려 줄어드는 등 ‘장애 유형별’ 갈등만 유발한 꼴이 됐다.”고 지적한다.
장애등급제는 폐지했지만, 이제는 장애인의 생존이 ‘등급’이 아니라 ‘종합조사표’의 점수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장애인등급제 폐지는 적절하고 충분한 서비스 지원이 이뤄져야만 ‘진짜’ 폐지가 된다. 여전히 우리는 복지의 절대량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상’에 미치지 못하는 정도에 따라 등급이라는 낙인을 찍고, 특정 등급의 사람들에게만 복지를 제공 받을 기회를 주는 장애등급제가 유지되고 있다. 한정된 예산 속에 사람을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모두에게 적절한 방식의 서비스를 지원해야 할 것이다.
실천합시다.
- ‘정상/비정상’을 구분하지 맙시다.
- 다양하게 존재하는 장애인의 범주에 대해 고민합시다.
- 장애인에 대해 시혜적인 시각을 갖고 있지는 않았는지 성찰합시다.
- 장애인 인권을 보장하는 법 제정 운동에 동참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