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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 - 재일조선인, 그리고 기억해야 할 관동대지진 조선인 사건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19-09-10 (화) 16:16 조회 : 1090

재일조선인, 그리고 기억해야 할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9월 재일조선인.png

전쟁의 총알받이로, 군수품 공장, 비행장 건설의 징용 노동자로, 위안부로 또는 막노동이나 유학 등으로 1945년 종전 당시 200만 명의 조선인이 일본에 머물고 있었다. 그 이후 해방은 되었지만 먹고살기 위해 그대로 눌러앉은 60여만 명과 밀항자까지 합하여 1950년 6월 당시 재일조선인은 80여만 명에 달했다.

이들은 공무원·민간기업 취직이 원천봉쇄되었으며, 사회보장제도에서도 제외된 채 사회적 약자로, 잠재적 범죄자(외국인 지문 날인 등록)로 취급당하며 9만 명 이상이 북송선을 타는 아픔을 겪는 등, 조국의 정치 상황과 이념 갈등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살아왔다. 그리고 이들의 후손을 우리는 ‘재일교포’라 불러왔다.

그러나 이 호칭은 식민지 후손 외국인으로 살아온 이들의 삶과 뼈아픈 역사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 70년대 이후 오랜 법적 투쟁을 통해 대부분의 권리를 회복하였으나 오늘날 한국국적(46만 명), 일본국적(36만 명), 조선국적(3만 명)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3·4세들은 여전히 혐한 발언과 시위에 노출되어 있으며, ‘경계인’으로서 정체성에 대한 물음에 대면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기에 1세들이 일본에 건너올 당시에는 대한민국도 북한도 없었으며, 무엇보다 그들이 스스로 ‘조선사람’이라고 불러왔기에 재일교포가 아닌 ‘재일조선인’으로 호칭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무엇보다 세계 인권사에 대학살 사건으로 기억되어야 할, 1923년 9월 1일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희생자들의 후예이기에 더욱 ‘재일조선인’이다.

당시 대혼란의 책임을 조선사람에게 떠넘기기 위해 일본 정부는 조선인이 불을 지르고, 우물에 독을 타고, 습격해올 것이니 피신하라는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광분한 군경과 자경단(재향군인과 청년으로 구성)에 의해 6,661명의 조선인이 학살당하였다.

조선인 학살이 공문서에 기록되어 있는 역사적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인정은 커녕, 증거를 훼손하고 있으며, 정당방위였다는 개인적 망언까지 나오고 있는 현실이다.

우리가 기억하고, 우리가 추모하자!!!

현재 더욱 극단으로 치닫는 한일관계, 일본 정부의 경제 보복 조치 앞에서 동북아 평화를 위한 하늘의 지혜와 기도가 더 절실히 요구된다.


함께 실천합시다

- 재일교포가 아닌 재일조선인이라 부르기 위해 노력합시다.

- 재일조선인의 역사 역시 우리의 역사임을 기억하고 공부합시다.

- 9월 1일이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의 날임을 기억합시다.

- 일본을 무조건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과 어떤 관계를 가져야 할지 고민합시다.